경자는 올해 75살로, 군산 신흥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과거 '빈민촌'이었던 신흥동은 현재는 지자체에서 '말랭이 마을'이라는 명칭으로 문화 사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일본식 가옥이 남아있는 관광지로 활성화되면서 옛날과는 다른 형태의 동네가 되었다. 

-여기는 군산 내에서도 완전히 시골이었지. 우리 집 앞에 주차장이 대부분 밭이었는데 지금은 180도로 달라졌어요. 여기서 살다가 객지로 나가서 가끔씩 고향이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같은 동네인지 모르겠대. 난 여기서 맨날 보니까 변화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길도 못 찾겠대요. 이제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이저랑 남편 그리고 저쪽으로 가면 있는 남자밖에 없어요. 

경자는 20대에 여군을 전역하고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가 운영하는 유리 가게의 경리를 볼 사람이 없어서 군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결혼하고부터는 임금노동을 하지 않았지만 자식들을 키워놓고는 새마을 운동 부회장, 군산시 총무, 신흥동 마을 통장을 15년간 해왔을 정도로 활동적인 사람이다. 현재는 주민자치위원회의 재무를 맡고 있다. 

-내가 여상에서 타자를 배웠잖아. 학교 졸업하고 세무서를 1년 다니다가, 여군 모집 한다고 여군들이 정복을 딱 입고 찍은 사진을 시청 게시판에 붙여놓은 걸 봤어요. 그걸 보니까 막 그냥 멋있어서, 아이고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영화동 사는 친구한테 “야, 명이야. 나 오늘 저녁에 여군 간다. 내일 아침에 나 없어지면 이제 우리 아버지 난리 날 테니까 내일 아버지한테 가서 나 여군 갔다고, 가서 일주일 내로 내가 편지 할 테니 기다리라고 그렇게 얘기 좀 해주라.” 그랬더니 친구가 더 앞장서서 같이 여군에 입대했어요. 

-여자들은 행정을 하니까 6개월 훈련받고, 다른 부대로 배치되어서 군대 생활 너무 신나게 했어요. 2년 최대하고 육군종합행정학교로 직장을 다녔어요. 위치가 서울에 말죽거리, 지금 말하자면 송파야. 거기서 직장 생활을 몇 년 하다가 스물네 살에 군산으로 다시 왔어요. 아버지가 유리 가게를 차렸는데 경리 볼 사람이 없다고 해서 끌려오다시피 직장 그만두고 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좋은 직장 놔두고 시집은 왜 왔는지 아쉬워 죽겠어.(웃음) 

경자의 집은 경자의 남편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경자는 결혼을 하면서 지금의 집에 살게 되었다. 경자가 이 집에서 살아온 50년 동안 집은 여러 번 변화했다. 초가집에서 새마을 운동 시절 슬레이트(양철) 집으로 그리고 20년 전, 노후한 집을 철거하고 완전히 새로 지은 집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 때는 초가집을 부순 게 아니라 거기다가 슬레이트만 올렸어요. 우리 동네만 한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새마을 운동을 했고 많은 변화가 왔죠. 아주 두메산골 같은 데가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초가집은 거의 그때 없어졌어요. 그러고 나서 20년 전에 기존의 집을 싹 헐고 새로 지었죠. 한 3개월 걸려서. 그동안 남의 집 빌려서 머물렀어요.

같은 터였어도 집의 형태에 따라 경자는 삶의 질이 다르다고 느낀다. 

-초가집 때는 마당이랑 밭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놓으니까 방은 작게 지을 수밖에 없고 실내에 실질적으로 쓸 공간이 없는 거예요. 그 시절에 거실 같은 거는 없고 마루, 쪽마루 같은 거나 좀 있고 그랬는데 사람이 자려해도 반듯이 못 누웠다고. 아무튼 너무나 오래된 집이라 고생 많이 했어요. 시숙, 남편의 형님도 폐가 안 좋아서 결혼도 안 하시고 내가 모시고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시어머니는 결혼하고 우리 첫째 낳고 얼마 안 돼서 돌아가시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얼마나 그 집(초가집)이 형편없었으면 지금 집은 호텔이라고 평가를 해요. 

-초가집 때는 바람 불 때 문 열어 놓으면 막아주는 데가 없어서 눈이 방까지 들어왔어요. 애들 셋 데리고 힘들게 살았어요. 지금 생활이 옛날보다 더 부자야. 이제 뭐 빚진 것도 없고 자식들도 다 커서 저희들 벌어서 저희들 먹고 사니까. 돈 달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그때는 애들이 어려서 날마다 돈을 쥐고 살아야만 했으니까 힘들었지. 

지금 집은 방이 3개에 화장실 1개 그리고 거실과 주방이 이어진 구조로 되어있다. 경자가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은 뇌출혈로 쓰러진 후 투병 생활을 하는 남편이 머무는 거실이고, 경자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안방이다. 경자는 그곳에서 핸드폰을 이용해 테트리스 게임을 하거나 티브이를 보고 그냥 누워있기도 한다. 경자의 하루는 어떨까. 

-5시 반에서 6시쯤에 일어나요. 순전히 남편 뒤치다꺼리를 하는 거죠. 씻기고, 식사 준비해서 먹이고, 옷 입히고. 그렇게 하다 보면 8시 반쯤에 주간보호센터에서 사람이 와서 남편을 데리고 가요. 거기서 환자를 온종일 봐줘요. 그러다 5시쯤 되면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와요. 볼 일이 있으면 8시 반부터 5시까지는 이제 내 개인 시간이니까 그때 일을 보죠. 동네 공방에서 구슬로 마스크 목걸이 줄 따위를 만들거나 주민자치위원회의 재무를 보거나 친구들 만나거나 은행 다녀오는 일들을 하는 거지. 

경자의 일상에서 가장 큰 체력을 요구하는 건 남편의 병구완이다. 경자는 남편의 투병 전에는 감기 한 번 걸려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었다. 

-지금은 엉망이지.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아도 진짜 입만 살았고 허리도 수술해서 인조 뼈 두 개 넣었지, 무릎도 수술했고. 안 아픈 데가 없어. 무릎이 제일로 중심인데 남편 때문에 (병이) 생긴 거지 뭐. 나 감기 한 번도 안 앓았었어요. 얼마나 건강했다고. 근데 남편이 병원에 있었던 2년 동안 모든 병이 다 왔어. 혈압, 당뇨, 고지혈증, 협심증, 저혈당. 병이 오면 사람이 꼭 꽃나무 시들 듯이 그냥 팍 쓰러져 버려요. 그렇게 병원에서도 내가 몇 번을 쓰러졌었다고. 

경자의 실질적인 경제적 수입은 없다. 공방에서 하는 일도 ‘동네일’이기 때문에 하고 있는 자발적인 봉사에 가깝다. 나라에서 받는 지원은 연금(장애연금, 노령연금, 국민연금)이 전부다. 입원비, 수술비, 의료기기 구입 등에 보탬이 되는 연금은 남편의 투병에 도움이 된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손주들이 왔을 때 과자를 사 주고 용돈을 줄 수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남편이 쓰러지니까 직장에서 바로 퇴직 처리를 하더라고요. 뇌출혈로 쓰러졌으니 사람 구실을 못 할 거라고 판단을 했는지. 그때 바로 퇴직금 탔는데, 이 병이 하루 이틀 가는 것도 아니고 평생 가는 거잖아요. 남편의 경우 뇌출혈에 편마비라서 약값이며 병원비가 많이 들어요. 내가 새마을 운동 하면서 부회장을 8년 하고 군산시 총무도 봤었어요. 진짜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오래 하면서 인정을 받았어요. 그래서 시청 직원이나 동장님, 그런 분들한테 가서 염치를 불고하고 영세민 지원해달라고 그랬어요. 창피고 뭐고 어떡하겠어, 우선은 내가 살아야겠는데. 그때 수급자 신청했던 것이 지금까지 도움이 되죠. 

-남편이 사용하는 휠체어나 의료 침대도 우리가 돈 주고 사기 어려운데 정부에서 보조를 해줘서 산 거죠. 자식들이 있어도 나는 애들한테 하나도 도움을 안 받아요. 오히려 내가 도와주면 도와줬지. 의료 기기에 이런 거 그런 거 저런 거 다 해서 도움을 받으니까 불편한 거는 없어요. 

-사실 돈이라는 거는 있으면 있을수록 좋지만, 이 정도 가지면 그냥 우리 두 사람 살면서 손녀 손자한테 과자 사 주고 용돈 줄 수 있는 그 정도의 능력은 되니까 괜찮아요. 

경자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여생을 이 집에서 보낼 것이라고 한다. 경자의 자식 중 막내가 경자의 집을 개조하여 식당으로 운영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만 정확히 정해진 것은 없다. 그 일이 아니고서는 경자가 집을 처분하거나 다른 가족이 들어와서 살 일이 없기 때문에 현재의 집을 떠나는 것이 상상이 잘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경자는 집을 옮길 수 있다면 죽기 전에 한 번은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다고도 한다. 

-아파트는 외출할 때 그냥 현관문 하나만 잠그고 나가면 되니까 간편하잖아요. 근데 여기는 도로변에 집이 있고 창문이 바깥으로 나 있다 보니까, 어디 한번 나가려면 막 창문이 몇 개야, 그거 다 잠가야하니까 번거롭잖아요.

경자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가족들하고 같이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안식처죠. 진짜 휴식 공간이고. 집이 없으면 뭘 어떻게 했겠어요. 이 집 지은 지 20년 넘었다고 하지만 지금도 처음 지었을 때 그 기분이에요. 도배도 다시 안 했고, 그때 샀던 가구 그대로 쓰고 있어요. 

-초가집에 바람막이도 없는 집에서 애 셋에다 남편과 나, 남편의 형님까지 여섯 식구가 한 달에 80kg짜리 쌀 한 가마를 먹었다면 그 반찬값은 얼마나 됐겠어요. 반찬이라고는 김치하고 그냥 냄비에다 끓인 된장찌개 하나였지. 다른 거 뭐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어요. 요즘에야 고기값보다 생선값이 더 비싸지만, 그때는 생선이 참 쌌어요. 생선 하나 사다가 다듬어서 상 가운데다 놓으면 여섯 식구가 그거 먹느라고 머리 숙이고 서로 얼굴 한 번 안 쳐다보고 다 먹고 나서야 고개 들었다니까. 

-그 시절에 참 고생했지만 그래도 그 집이라도 있었으니 자식 키우고 지금까지 살았지.

｜'00의 집, 그 집'은 ①군산 시민이고 ②한 집에서 최소 20년 이상 거주하신 ③만 65세 이상의 고령 여성을 인터뷰한 기획 인터뷰로 군산 내에서 각기 다른 동네에 거주하시는 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2022 청년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기획 및 제작_우만(WUMAN)

｜문의_wuman.official@gmail.com